
수유 텀을 억지로 늘리면 아기가 더 잘 자고 엄마도 편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억지로 텀을 늘리려 할수록 아기는 더 크게 울었고, 수유 자체가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수유 텀은 엄마가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충분히 먹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꽤 늦게 깨달았습니다.
아기의 배고픔 신호, 정말 보이기나 하는 건가요
"아기가 울면 배고픈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생각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봅니다. 저희 아이는 3.8kg으로 태어난 편이었는데, 조리원에서 가장 크게 울부짖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울음이 터지기 직전에 반드시 먼저 신호가 왔습니다.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손을 자꾸 입으로 가져가는 행동이 먼저였습니다.
이 초기 배고픔 신호를 전문 용어로 '공복 큐(hunger cue)'라고 합니다. 여기서 공복 큐란 아기가 아직 울기 전 단계에서 배고픔을 표현하는 신체적 행동 신호를 의미합니다. 입 근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을 때 아기가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며 빨려는 행동을 취하는 것도 이 공복 큐의 하나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이 반응이 나올 때 수유를 시작하면 아이가 훨씬 차분하게, 그리고 더 오래 먹었습니다.
반대로 이 신호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이미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수유가 시작되다 보니 아기는 지쳐서 조금만 먹고 잠들거나, 급하게 먹다가 가스가 차기 쉽습니다. 모유수유의 경우에는 전사 반사(letdown reflex), 즉 모유가 실제로 흘러나오는 반응이 제대로 유도되지 않아 아기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먹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전사 반사란 아기가 젖을 빨 때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유선을 자극하고 모유가 흘러나오도록 만드는 반사 반응을 말합니다.
아기가 배부름을 표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읽어야 합니다. 젖을 밀거나, 혀로 유두를 밀어내거나, 입을 다무는 행동은 "그만 먹겠다"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이걸 무시하고 억지로 더 먹이는 것은 아기에게 굉장히 불편한 경험이 됩니다. 저도 초반에 "한 번에 많이 먹여야 텀이 길어진다"는 생각에 억지로 더 먹이려 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오히려 수유 거부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모유수유 가이드라인에서 아기 주도의 수유(responsive feeding)를 원칙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반응적 수유(responsive feeding)란 정해진 시간표가 아니라 아기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여 수유하는 방식을 뜻합니다(출처: World Health Organization). 이 원칙에 따르면 수유 텀이나 횟수를 부모가 설계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 초기 공복 큐: 입맛 다시기, 고개 좌우로 흔들기, 손을 입으로 가져가기, 입을 뻐끔거리기
- 중간 배고픔 신호: 보채기 시작, 몸을 꼬거나 긴장시키기
- 후기 배고픔 신호(늦은 신호): 강하게 울기 — 이 단계에서는 수유 전 진정이 필요할 수 있음
- 배부름 신호: 유두 밀어내기, 입 다물기, 혀로 밀기, 고개 돌리기, 표정 이완
수유량 가이드라인, 따라야 할까요 참고만 해야 할까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보면 "우리 아이는 3개월인데 한 번에 180ml씩 먹어요"라는 글에 댓글이 수십 개 달립니다. 저도 그 글을 보면서 "우리 아인 왜 이렇게 조금 먹지?"라고 괜히 불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비교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월령별 수유량 가이드라인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생후 3개월까지는 체중 1kg당 150ml, 3~6개월 사이에는 체중 1kg당 120ml를 하루 총량의 기준으로 활용합니다. 아기 몸무게에 이 수치를 곱하면 하루 총 수유량이 나오고, 이것을 수유 횟수로 나누면 회당 수유량의 기준이 도출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집단 평균을 기반으로 한 가이드라인일 뿐, 개별 아기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실제로 저희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같은 월령 아기들보다 수유량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조리원 간호사분들도 "이 아이는 유독 많이 먹는다"고 하셨을 정도였습니다. 반대로 체구가 작고 소화 능력이 느린 아기는 같은 월령이라도 훨씬 적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게 건강 이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수유량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지표는 따로 있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는 아기의 성장 적절성을 판단할 때 단순 수유량보다 체중 증가 추이, 소변 기저귀 횟수, 전반적인 활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도록 권고합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하루 소변 기저귀가 6개 이상 나오고, 정기 검진에서 체중이 성장 곡선을 따라 증가하고 있다면, 하루 수유량이 가이드라인보다 조금 적거나 많아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유 기록 앱을 사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써봤는데, 장점은 분명합니다. 수유 텀, 하루 총 수유량, 기저귀 횟수, 수면 패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제 800ml 먹었는데 오늘 720ml밖에 안 먹었다"는 숫자에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스트레스가 되면 오히려 수유가 더 힘들어집니다. 수치는 참고용이지, 매일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성장 급증기(growth spurt)라는 개념도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여기서 성장 급증기란 아기가 특정 시기에 급격히 성장하면서 일시적으로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자주 먹으려 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생후 2~3주, 6주, 3개월, 6개월 무렵에 흔히 나타납니다. 이 시기에 갑자기 수유 횟수가 늘어나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발달 과정입니다. 제 경험상 이 시기를 모르고 있으면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수유 텀을 억지로 늘리려 할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것, 저는 몸으로 겪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자기주도수유, 즉 아기가 배고픈 신호를 스스로 보낼 때 반응하고,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낼 때 멈추는 방식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다 보면 수유 텀은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서서히 자리를 잡습니다. 남의 아이와 비교하거나 가이드라인 숫자에 너무 얽매이기보다는, 지금 우리 아이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가장 확실한 기준입니다.